김단고의 생존일지
더는 지금처럼 살기 싫다면, 세 가지 질문부터 스스로에게 던져 보세요
2026.09.27

이혼한 직후 몇 달 동안, 저는 제 인생이 완전히 망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오히려 그때부터 무엇을 하든 제가 바라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지금도 그렇게 흘러가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제도나 책임감에서 벗어난 데서 오는 잠깐의 해방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혼했다고 모든 사람이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중요한 것은 사업이 망하거나 이혼하거나 어떤 형태로든 실패를 겪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찾느냐였습니다. 거기에 따라 그다음 인생의 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거창하거나 심오한 깨달음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인생의 방향을 다시 찾는 과정에서 붙든 것은 딱 세 가지 질문이 전부였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각자 인생을 자기 뜻대로 바꿀 수 있는 열쇠는 이게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마흔이 다 되도록 이 질문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듣고 나면 너무 뻔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마흔이 다 될 때까지 이런 고민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고민하지 않아도 주변에 이미 사회라는 보편적인 세계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고, 취업하고, 돈을 모으고, 결혼하고, 집을 삽니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이상한 사람 같았습니다. 좋은 대학에 못 가면 다른 대학이라도 가고, 좋은 회사에 못 가면 다른 일이라도 하면서, 환경에 따라 오차는 있어도 큰 틀에서는 그 선을 따라 사는 게 맞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사정은 달라도 이 선이 갑자기 막히거나 끊기는 순간이 옵니다. 제게는 그게 이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선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리는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습니다. 이 선 밖으로 나가면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그럼 어디로 가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인생의 기로에서 스스로 방향을 골라야 하는 고민을 그때 처음으로 하게 됐습니다.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내가 누구인가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묻고 내 인생의 답을 내려야 하니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결국 예스냐 노냐 둘 중 하나인데, 왜 결정을 못 할까?
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어느 방향으로 갈지 결정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잘 모르는 사람에게 그 결정을 맡길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이 나 자신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일단 나를 알아야 그다음 단계가 있습니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내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안다는 건 무엇일까요. 저는 완전히 ‘개인적인’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 스스로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혼을 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는 이유도 결국 어느 쪽이 더 행복할지, 어떤 선택이 나를 더 불행하게 만들지 확실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을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기준으로 고르면 그만큼 타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예전에 가족의 행복과 내 행복이 정확히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좀 희생해야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가족이 우선이니 포기해야지, 가족이 싫어하니 하지 말아야지.
물론 이런 마음도 어느 정도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나 자신의 행복을 무시할 만큼 중요한지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기 행복을 뒷전에 두고 살다 보면 스스로에게 가스라이팅을 하게 됩니다. 너의 희생이 너의 행복이야, 너는 어른이잖아, 그게 책임감이야.
-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포기한다
- “너의 희생이 너의 행복이야”라는 자기 최면
- 타협이 쌓여 결국 나를 갉아먹는다
- 관계를 무시하지는 않되 우선순위는 나
- 내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 먼저 안다
- 도망인지, 가고 싶은 방향인지 구분된다
방향을 정할 때만큼은 이기적이어야 합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최면을 걸었습니다. 가족이 행복하다면 나를 좀 숨겨도 괜찮다고. 그런데 그게 얼마나 갈까요. 결국 다 쌓입니다. 그러다 사업이 망한 일까지 겹치면서 우울증이 심하게 왔고, 이렇게 나를 속이는 방식으로는 더 버틸 수 없겠다는 생각에 이혼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살지를 스스로 정해야 할 때, 적어도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만큼은 이기적이어야 합니다. 다른 관계나 상황을 다 무시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우선순위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갉아먹으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이대로는 살 수 없겠다는 지경에서, 다른 것은 다 내려놓고 온전히 나만을 위한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만 기준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이기적으로 생각하니 오히려 답이 빨리 나왔습니다. 저는 인정과 신뢰에서 오는 감정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관종 기질이 좀 있어서, 나서고 인정받으며 살고 싶었습니다.
이제 와서 그걸 알았다고 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전 배우자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뒤 도장을 찍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다행인 것은,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충분히 고민한 뒤에 결정을 내렸다는 점입니다. 그저 너무 우울하고 힘들어서 무작정 도망치고 싶은 건지, 정말 가고 싶은 방향이 있어서인지를 먼저 확실히 알아야 그 결정이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가 정해집니다.
내 인생의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이혼하고 나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습니다. 그게 제가 살면서 인생의 방향을 온전히 제 의지만으로 결정한 첫 번째 선택이었다는 것입니다.
살면서 자기 인생의 방향을 100% 자기 의지로 정할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제 의지만으로 인생을 결정했습니다. 알고 보니 내 인생의 선택권은 나에게 있었습니다. 말로 하면 너무 당연한데, 왜 마흔 살이 되도록 그걸 못 했을까요. 내가 하고 싶은 걸 그냥 하면 되는 거였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놀라웠습니다.
나를 알고 나니 하고 싶은 일이 보였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거기에 맞는 선택을 하자, 두 번째 질문의 답이 바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회사 다니는 게 정말 싫었습니다. 좋아서 다니는 사람이야 드물겠지만, 기질이라는 게 있습니다. 저는 단체나 조직, 정해진 규칙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내 생각과 달라도 굽히고 타협하고, 틀린 것도 맞는 것처럼 포장하고, 봐도 못 본 척해야 하는 일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일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인생을 모험하듯 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꿈꿨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꿈으로만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인생은 누구에게 허락받을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그냥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인생의 선택권이 온전히 자기에게 있다는 걸 인지하고 나면, 선택지의 범위가 어마어마하게 넓어집니다. 처음에 제 인생이 바라는 방향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말씀드린 게 바로 이 부분입니다. 운이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각자가 원하는 삶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고 싶은 일의 조건을 하나씩 정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자유롭게,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일할 방법은 무엇일까. 그러자 조건이 하나씩 정해졌습니다. 직원을 두지 않을 것, 혼자서 어디서든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을 것. 그렇게 따져 가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이 윤곽을 갖췄습니다.
그게 지금처럼 나를 자산으로 삼아 상품화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행복은 인정과 신뢰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제 경험을 팔아서 인정과 신뢰를 주고받는 일을 고르기로 했습니다. 마침 유튜브와 AI 덕분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시작만 하면 됐습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는 저지르는 과정이 대신 답해 줍니다
세 번째 질문의 답은 따로 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그걸 저지르면, 그 과정과 결과가 그대로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퇴사한 뒤 배달로 생활비를 벌면서 유튜브를 제대로 해 보기로 했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스튜디오가 생겼고, 전자책과 컨설팅 상품이 생겼습니다. 만들고 싶었던 일의 형태가 조금씩 모양을 갖춰 갔습니다. 말하는 대로 된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사는 모습을 꿈만 꿨습니다. 그대로 있었다면 지금도 꿈이었을 겁니다. 일단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를 상품화해서 파는 이야기를 유튜브에 올리다 보니, 그걸 보고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유튜브를 시작할 수 있게 돕는 일을 하게 됐고, 배달하는 시간도 점점 줄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1:1 컨설팅 상품을 정식으로 열었는데, 감사하게도 사흘 만에 컨설팅과 레슨 자리가 모두 찼습니다. 그중 제주도에 사는 구독자분이 계셨는데, 한번 찾아뵙고 싶던 차에 감사하게도 불러 주셔서 제주도로 출장을 가게 됐습니다. 이런 일을 하자고 마음먹고 시작했더니 실제로 삶이 그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확인한 셈입니다.
물론 꿈을 다 이룬 것도 아니고 갈 길도 멉니다. 그래도 무언가 바뀌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집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이 벅찬 기분을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지금처럼 못 살겠다는 순간이 나를 만날 기회입니다
운이나 실력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 상황을 조금씩 바꿔 가는 가장 큰 원동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역시 처음의 세 질문에서 모든 게 시작된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다시 생각해도 평범한 질문이고, 누군가는 쉽게 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어떤 상황에서 곱씹느냐에 따라 결과가 정말 달라집니다. 종교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시험을 당해 봐야 내 믿음이 진짜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더는 이대로 살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질문들을 붙들었습니다. 그렇게 절박하고 막막했기 때문에 오히려 답이 더 확고했던 것 같습니다.
계기는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사업이 망했을 수도, 회사에서 밀려났을 수도,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됐든, 인생이 잘 풀릴 때보다 ‘지금처럼은 못 살겠다’ 싶은 순간에 오히려 자기 자신을 만나기 쉬운 것 같습니다.
혹시 지금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거나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미워하기보다 지금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만날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세 가지 질문의 답을 하나씩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을 먹고 사는 사람인지,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댓글로 편하게 남겨 주셔도 좋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 감정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 이 글은 유튜브 〈김단고의 생존일지〉 44화를 글로 옮긴 것입니다. 유튜브에서 영상 보기
➡️ 제주도 출장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내가 결정하면 그게 내 직업이 되는 시대, 허락을 기다리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