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고의 생존일지

사업이 망하고 이혼한 17년 차 마케터가 송도를 기회의 땅으로 고른 이유

2026.06.14

사업이 망하고 이혼한 17년 차 마케터가 송도를 기회의 땅으로 고른 이유

회사를 완전히 떠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저 말고는 누구도 제게 잔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한 번도 늦잠을 자거나 침대에서 하루를 흘려보낸 적이 없습니다.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루틴으로 하루를 준비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요.

한때 기자였고, 기획자였고, 마케터였고, 사업가였던 제 지금 직업은 배달 기사입니다. 이 글은 ‘인천의 강남’이라 불리는 송도에서 망가진 삶을 다시 조립하며, 나를 위한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결론을 말씀드리면, 기회는 누가 떠먹여 주지 않습니다. 기회가 많은 곳으로 직접 가서, 기회가 생길 만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배달은 감정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음식을 받아 목적지에 가져다주고 돈을 받는 일을 반복합니다. 경제적인 생존도 중요하지만, 사람과 조직에서 생기는 감정 소모를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큰 이점이었습니다. 덕분에 하루에 쓸 수 있는 생각의 마일리지를 온전히 제 미래를 준비하는 데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도 친해지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어딜 둘러봐도 하늘에 닿을 듯한 고층 아파트의 바다, 그 사이를 쉴 새 없이 헤엄치는 고가의 수입차들, 학비가 비싸기로 손꼽히는 학교와 끝없이 늘어선 학원가. 인생 대부분을 달동네 빌라촌에서 살아온 제 눈에는 이곳의 일상적인 풍경이 아직도 낯섭니다.

그런데도 기어이 송도에서 월세를 사는 이유는, 망한 제게 다시 일어설 기회가 간절했고 송도가 바로 그 기회의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망한 직후에는 기회 같은 건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갓 망한 직후에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폐업의 잔재를 정리하고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을 때 남은 건 현금 300만 원, 2억이 넘는 빚, 그리고 1톤 트럭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이삿짐이 전부였습니다.

당장 지낼 곳이 필요했던 저는, 전세 사기가 휩쓸고 지나간 동네의 압류된 빌라에 보증금 없는 단기 월세로 첫 둥지를 틀었습니다.

망한 사람처럼 살면 진짜 망한 사람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중고 거래로 처음 생긴 내 공간을 꾸미고, 맛있는 밥을 차려 먹었습니다. 처지에 맞지 않는 호사 같았지만, 그러지 않으면 마음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망한 사람처럼 살면 진짜 망한 사람이 되어 버릴 것 같았으니까요. 나는 아직 망하지 않았다고, 이건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속였습니다.

고독을 외면하려고 지인들을 불러 술자리를 벌이기도 했지만 외로움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잘 꾸며 놓고 사는 사람처럼 보여도 여전히 고통스러웠고, 무엇보다 다시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현실은 3개월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갔는지 조회하며 가슴 졸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래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첫 목표는 보증금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처럼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다는 욕심은 진작 버렸지만, 평범한 일상을 되찾으려면 눈앞의 한 계단은 올라가야 했습니다. 언제까지고 단기 월세를 전전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목표가 정해졌습니다. 빚을 갚는 틈틈이, 최소한 월세라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만큼의 보증금을 모으는 것입니다.

사업이 망한 직후 운 좋게 들어간 회사에서 낮에는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고, 퇴근과 동시에 배달 기사가 됐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퇴근 후 배달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대로 된 월세를 알아볼 형편이 됐을 무렵, 시대의 흐름이 제 인생을 중요한 갈림길에 세웠습니다.

버티기보다 먼저 뛰어내리기로 했습니다

AI의 파도가 밀려오면서 가장 먼저 밥그릇에 금이 가기 시작한 분야가 마케팅이었고, 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당장 3년 뒤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끝까지 버티기보다 먼저 뛰어내리는 쪽을 택하고 퇴사했습니다. 언젠가 대체되겠지 걱정하며 사느니, 대체되지 않는 생산자로 살아남아 보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루라도 젊고 건강한 지금이 그런 무모한 도전의 적기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팔 수 있는 유일한 상품인 저 자신을 사람들에게 직접 팔기로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콘텐츠 만드는 법과 브랜딩을 가르쳐 주다가 소규모 레슨과 외주를 받으며 자신감이 붙었고, 이걸 지속 가능한 1인사업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 과정을 처음부터 담으려고 유튜브도 시작했습니다.

서울에는 없던 조건이 송도에는 있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스튜디오, 사무실, 강의실, 그리고 사는 집까지 겸할 오피스텔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 조건에 고객 접근성과 감당할 수 있는 월세까지 갖춘 곳은 서울 안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친구의 제안으로 눈여겨보게 된 송도는 그야말로 완벽한 대안이었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충분한 공간이 있었고, 고객이나 수강생이 찾아올 만한 인프라도 갖춰져 있었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무엇을 해 먹고살지는 그동안 부업으로 해 온 배달이 해결해 주었습니다. 길에 익숙해지고 나면 생활비 정도는 벌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배달과 사업 준비를 오가며 흘러갑니다

물론 배달을 한다고 매일 돈이 잘 벌리는 건 아닙니다. 주문이 뜸한 시간에는 길가에 멍하니 서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딘가에 앉아 유튜브 대본을 쓰거나, 배달하다 떠오른 아이디어와 글감을 정리합니다. 본업에 대한 생각에 몰두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니, 새 일을 준비하는 동안 이만한 버팀목이 없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나 갈 무렵 집으로 돌아옵니다. 밖에서 사 먹을 돈이 아깝기도 하고, 주문이 뜸한 오후에 굵직한 일들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건 유튜브 채널뿐이지만, 1인사업을 설계하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일주일에 영상을 한 편씩 올리면서 수면 아래의 중요한 일들까지 준비하려면 한 시간도 넋 놓고 쉴 틈이 없습니다. 오프라인 컨설팅과 레슨 상품의 커리큘럼을 다듬고, 판매용 웹사이트를 만들고, 각종 제안서를 준비하고, 지원 사업도 틈틈이 살핍니다.

다섯 시에 다시 저녁 배달을 나가기 전까지가 하루 중 가장 집중하는 시간입니다.

같은 하루가 쳇바퀴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런 생활이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하루하루가 즐겁고 기쁩니다. 주말도 여가도 없이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데도 쳇바퀴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원하는 목표에 아주 조금씩, 야금야금 다가가고 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입니다.

살아남는 과정을 보여 주려고 시작한 유튜브 채널은 이 영상을 찍을 무렵 구독자 5천 명을 넘었습니다. 상품을 테스트하려고 시작한 유튜브 멤버십에는 두 달 만에 40분이 가입해 주셨고, 가장 비싼 요금제를 구독해 주신 분도 10분이 넘었습니다.

조금씩 확신이 서기 시작하면서 오프라인 원데이 클래스를 본격적으로 준비했습니다. 오피스텔을 사무실 겸 강의실로 바꾸고, 테스트 운영을 위해 구독자분들을 모실 계획도 세웠습니다.

집주인의 연락이 다시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착실히 계단을 밟아 나가면 머지않아 송도라는 기회의 땅에 나만의 작은 울타리를 만들게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적어도 집주인이 말을 바꾸기 전까지는요. 직접 들어와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날개를 펴려던 참에 갱신권도 쓰지 못하고 이사를 가야 한다니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빨리 잊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더 나은 환경을 준비할 기회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기회는 누가 거저 주는 게 아니라, 나에게 일어난 일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되뇌며 배달하는 틈틈이 집을 보러 다녔습니다.

다행히 고민할 거리는 많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어 선택지가 좁기도 했지만, 막연했던 송도 입성 초기와 달리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갑작스러운 퇴거를 계기로 사업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선택을 했습니다. 예전 집이 사실상 아파트나 다름없는 오피스텔이었다면, 새로 구한 곳은 사업장으로 훨씬 적극적으로 쓸 수 있는 곳입니다.

빈 방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저녁 배달을 나가기 전, 곧 이사 갈 집에 잠시 들렀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을 나의 사업으로 채워 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꽤 두근거렸습니다.

가벽으로 강의 공간을 나누고, 탕비실을 꾸미고, 구독자분들께 밥을 차려 드리고, 수강생분들이 앉아 있는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이 빈 공간에서 거기까지 가는 과정을 다시 나눌 수 있다는 게 무척 설렙니다.

늘어난 지출을 감당하려면 한동안 배달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오늘은 저녁 배달을 마치고 촬영 장비를 철수하고, 찬장과 냉장고를 정리해야겠습니다.

오늘 저녁은 냉장고에서 무엇을 털어 볼까요.


🎬 이 글은 유튜브 〈김단고의 생존일지〉 30화를 글로 옮긴 것입니다. 유튜브에서 영상 보기

➡️ 이삿짐을 싸며 정리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망한 살림에서 나온 비싼 물건들, 버리고 나서야 알게 된 내 가치를 드러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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