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고의 생존일지
AI 시대에 40살 직장인이 잘리기 전에 먼저 퇴사한 이유
2025.11.30

저는 17년간의 사회생활을 접고 혼자 살아남기로 한 40대입니다. 30대의 끝자락에 연달아 실패해 모아 둔 것을 모두 잃었는데도 퇴사까지 결정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이 글에서는 그중 하나인 AI 때문에 불안해진 제 미래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AI 시대의 유망 직업’ 같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제 밥벌이가 1년 뒤, 2년 뒤에 어떻게 될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AI 덕분에 늘어난 생산성의 혜택은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자가 가져갑니다. 그렇다면 회사를 그만두고 제가 저를 고용하면 됩니다.
생산성은 올랐는데 내 가치도 올랐을까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합니다. 아이폰이 나오고 10년 동안 바뀐 것보다 코로나 이후 2년 동안 바뀐 게 더 많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 저는 오히려 AI 때문에 제 가치가 갉아먹히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AI 없이는 일하기 힘들 만큼 생산성도 효율도 올랐는데, 제 가치도 같이 올랐는지 생각해 보니 아니었습니다.
고졸 콤플렉스가 저를 도구에 매달리게 했습니다
사무직이 많이 쓰는 엑셀, 파워포인트, 포토샵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런 도구를 잘 다루는 사람이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모습은 다들 보셨을 겁니다. 굳이 내 시간을 써 가며 배우는 이유는 결국 생산성, 즉 더 빠른 시간에 더 나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학력 콤플렉스가 심했습니다. 고졸이라 무시당할까 봐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래서 실무에 바로 도움이 되는 도구를 정말 열심히 익혔습니다. 가장 먼저 배운 건 파워포인트와 포토샵이었습니다. 엑셀은 천천히 배워도 되지만, 이 둘은 당장 남들보다 나은 결과물을 눈앞에 보여 줄 수 있었으니까요.
20대에는 대부분 실무자라 결과물이 조금만 나아도 평가와 기회가 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도구를 잘 다루면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 줄 수 있구나’ 하고 배웠습니다.
30대에도 뒤처질까 봐 노션, 피그마, 워드프레스, 사진 촬영과 영상 편집까지 계속 익혔습니다. 지금은 거의 표준이 된 노션과 피그마는 운 좋게 일찍 접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고졸치고는 과분한 기회를 얻으며 30대를 버텼고, 이렇게만 살면 40대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30대 중후반에 AI를 만났습니다.
처음엔 AI를 40대를 버틸 도구로 봤습니다
처음에는 AI도 마케팅용 포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항균 은나노 원적외선’ 같은 느낌이었지요.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니 그 안에 미래가 있었습니다.
20대에도 30대에도 도구를 배워 살아남은 촉이 있다고 믿었기에, 생성형 AI를 접하자마자 느꼈습니다. ‘이건 장난감이 아니다. 이걸로 40대를 버틸 수 있겠다.’ 남들보다 일찍 배워 두면 적어도 내가 속한 집단에서는 앞서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바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배우는 속도보다 AI가 발전하는 속도가 빨랐습니다
그런데 2년도 안 돼 ‘딸깍’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포토샵이나 오피스처럼 배워서 써먹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배우는 속도보다 AI가 발전하는 속도가 더 빨랐습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몇 주씩 걸리던 문서나 설계 작업이 이제는 한두 시간이면 끝나고, 프로토타입까지 바로 나옵니다. 그때부터 진지하게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모두가 하루에 세 개씩 만드는 시대
AI를 잘 쓰면 생산성이 오른다고들 합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생산성은 남들보다 일을 잘해서 그것이 변별력 있는 성과가 될 때 가치가 생깁니다.
주변 사람들이 하루에 물건을 하나씩 만들 때 나 혼자 세 개를 만들면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 모두가 하루에 세 개씩 만드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예전에 모니터 옆에 늘 띄워 두던 게 파워포인트였다면, 지금은 그 자리가 GPT로 바뀌었으니까요. 모두가 세 개를 만들면 그게 보통이 됩니다.
일은 늘고 몸값은 그대로입니다
처음에는 작업이 빨리 끝나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일이 빨리 끝나면 쉬는 게 아니라 다른 일을 하게 됩니다. 나뿐 아니라 옆 사람도, 조직도 그러니 그게 기본값이 됩니다.
하루에 하나 만들 때보다 생산성은 몇 배가 올랐는데, 예전에 만 원 받고 하나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세 개를 만들어도 똑같이 만 원입니다. 저는 여기서 근로의 가성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느꼈습니다.
- 도구를 잘 다루면 눈에 띈다
- 변별력 있는 성과가 된다
- 평가와 기회가 따라온다
- 빨리 끝낸 만큼 일이 더 늘어난다
- 하나에 만 원 → 셋에도 만 원
- 세 명 뽑던 자리에 한 명이면 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반대입니다. 하루에 세 개를 만들려면 세 명을 뽑아야 했는데, 이제는 한 명이면 됩니다. 인건비 효율이 엄청나게 좋아진 것입니다. 최근 해외 테크 기업들이 대규모로 인원을 줄이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내가 나를 고용하면 됩니다
여기서 결론이 보였습니다. AI로 크게 늘어난 생산성의 혜택은 생산자가 받습니다. 그렇다면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나를 고용하면 됩니다. 남의 생산에 쓰이는 인건비로 사는 대신 나를 위해 AI를 쓰면, 늘어난 생산성의 혜택도 내가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실무에 AI를 제대로 쓰지 않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업종마다 차이가 있을 뿐 그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 마음이 급해졌고, 그 고민 끝에 내린 답이 퇴사였습니다. 나이가 있으니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겁니다. 무섭고, 그래서 더 신중해야 했습니다.
퇴사 전에 세운 두 가지 계획
그래서 두 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첫 번째는 앞으로 생산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만들어 팔지, 즉 상품을 발굴하는 계획입니다.
두 번째는 그 상품을 만들 시간을 확보하는 계획입니다. 퇴사란 근로계약으로 회사에 빌려줬던 시간을 다시 내 것으로 가져오는 일이고, 그러려면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 큰돈은 못 벌더라도 상품을 만드는 동안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소득을 확보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세운 가설이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틀리면 어쩌겠습니까. 제가 맞다고 생각한 방향으로 계획을 다듬으며 계속 가 보는 수밖에요.
40대야말로 꿈과 낭만이 필요한 나이입니다
저는 이번 변화를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 일을 지속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맞다고 생각하는 쪽에 걸어 보기로 했습니다.
40대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시기가 맞습니다. 그래도 저는 지금이야말로 어릴 때보다 꿈과 낭만이 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는 꿈이 있어도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지 몰라 시간만 흘려보내기 쉽습니다. 지금은 경험이 쌓였고,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고, 실행할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나이니까요.
지금 AI 때문에 앞날이 불안하다면, 내 생산성의 혜택을 누가 가져가고 있는지부터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제가 생존을 준비하며 배운 것과 고민을 계속 나누겠습니다. 오늘도 살아남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 이 글은 유튜브 〈김단고의 생존일지〉 2화를 글로 옮긴 것입니다. 유튜브에서 영상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