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고의 생존일지
10년치 인생을 날리고 나락에 간 17년 차 직장인,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2025.11.23

고졸, 노점상, 빡빡이, 고도비만, 실패한 사업가, 빚쟁이, 돌싱.
어떤 사람은 제게 철 좀 들라며, 재미만 좇다 망한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모험으로 가득한 제 삶이 부럽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제 삶은 낭만일까요, 나락일까요.
사회에 나온 지 20년, 그중 직장인으로 산 지 17년. 저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어떻게 살고 싶은지 분명히 알게 됐고,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스스로를 먹여 살리기로 했습니다. 출근길 행렬에 더는 제 모습이 없다는 게 아직은 낯설지만, 이제는 현실입니다. 이 글은 그 결심에 이르기까지 꽤 흔하지 않았던 제 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닭꼬치 장사부터 시작한 이력
컴퓨터공학과에 잠깐 다니다가, 1년도 못 채우고 닭꼬치 장사가 너무 하고 싶어서 몰래 자퇴했습니다. 그러다 홍콩에서 피규어 보따리장사를 했고, 네이버 블로그가 돈이 된다고 해서 그것도 열심히 했습니다. 학벌 대신 남들에게 없는 경험이라도 쌓자는 생각이었습니다.
20대 중반, 갑자기 무서워졌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20대 중반이 되자 겁이 났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없는데 경력도 학벌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블로그를 해 본 경험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글과 이미지를 다룰 줄 알았으니까요. 덕분에 게임 웹진 디스이즈게임닷컴에서 신입 기자로 일을 시작했고, 콘텐츠 기획과 유입, 키워드, 체류 시간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마케팅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작은 회사의 마케터는 결국 잡부가 됩니다
마케팅은 역할의 울타리가 애매한 일입니다. 당시에는 글 쓰고, 사진 찍고, 포토샵을 다룰 줄 알면 작은 회사에 어떻게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작은 회사는 마케터에게 시키는 일이 많습니다. 보도자료를 쓰고, 상세페이지를 만들고, 광고를 돌리다 보니 몇 년 만에 딱 잡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꽤 재미있었습니다.
서른 살, 아무도 해 본 적 없는 유튜브를 맡았습니다
서른 살에 한 외식 기업의 마케팅기획팀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낡은 브랜드 웹사이트를 개편하다가, 운이 좋았는지 신사업 TF에 합류해 사업 기획과 PM을 맡았습니다. 그 신사업의 시작이 유튜브였고, 그렇게 백종원 유튜브 채널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문제는 팀원 중 유튜브를 해 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성공할 거라는 기대가 가장 무서웠습니다
당시에는 백종원 유튜브라면 시작만 해도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워낙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례를 분석할수록 TV에서 유명한 연예인이 유튜브에 오자마자 고전하는 경우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떻게든 성공시키려고 썸네일부터 콘텐츠 기획, 촬영 스케줄까지 매달렸고, 방송 촬영 현장을 따라다니며 카메라 밖의 일을 배웠습니다. 채널 오픈 직전까지 자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깬 적도 있습니다. 모두가 당연히 성공할 거라 믿는 일, 잘해야 본전인 일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부담인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채널은 다행히 잘됐습니다
다행히 채널은 잘됐습니다. 골드 버튼과 실버 버튼을 같은 날 받아 양손에 안고 잠시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저를 빼고는 다들 기본기가 뛰어난 사람들이라 금방 시스템을 만들었고, 채널을 회사의 계열 사업으로 키울 다음 단계를 준비했습니다.
회사가 가는 방향과 제가 살고 싶은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회사가 가는 방향과 제가 살고 싶은 방향이 많이 달라져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연차가 쌓이면 나름의 인사이트와 기획 의도, 그것이 맞다는 근거를 갖출 능력이 생깁니다. ‘나라면 그렇게 안 할 텐데, 이 방향이 맞는데.’ 그런 생각이 쌓이다 결국 그만뒀습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스타트업, 그리고 순식간의 추락
회사를 나와 경험 삼아 1년 동안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했습니다.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한 스타트업의 설립 멤버가 되어 마케팅을 맡았습니다. 도쿄게임쇼 같은 무대에서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해외 VC들에게 피치덱을 돌렸습니다. 시드 투자를 넘겼고, 서비스를 출시했고, 시리즈 A가 눈앞에 있었습니다. 드디어 성공한 인생을 살게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꿈이었습니다. 회사가 쓰러지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흙수저 고졸이 여기까지 올라와 나도 이제 잘난 사람이라고 착각하던 사이, 월급이 밀리고 여기저기 돈을 빌리게 됐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모아 둔 것은 다 날아갔고 빚까지 크게 져 있었습니다.
나락보다 힘든 건 현실을 인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보다 더 힘든 건 그 현실을 인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성공의 길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모두 착각이었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문자 그대로 죽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평소에는 즐겁게 살자는 마음이라 안 좋은 생각이 들어도 웃어넘겼습니다. 그런데 우울증이 깊어지던 어느 날 저녁, 설거지를 하다 잠깐 삶을 내려놓는 상상을 했더니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고 몸이 아늑해졌습니다. 그 순간 소름이 쫙 끼치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평생 가장 무섭고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습니다.
살아남을 궁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살아남을 궁리를 했습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그나마 경력을 잘 쳐줄 외식업계로 돌아가 송도의 한 외식 프랜차이즈에서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에도 업적 배지가 쌓입니다
게임에서 업적을 달성하면 배지를 받듯, 인생도 그렇습니다.
고졸, 노점상, 빡빡이, 고도비만, 실패한 사업가, 우울증, 빚쟁이, 돌싱.
짧지 않은 삶을 살아오는 동안 저를 수식하는 단어가 이렇게나 늘었습니다. 현실이 게임보다 무서운 점은 이런 업적이 좋은 것만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개는 낙인이나 프레임이 되고, 어떤 단어는 들을 때마다 가슴을 후벼 팝니다.
그래도 좋게 보면, 이 키워드들이 모여 40대의 제가 됐습니다. 살아지는 대로 산 시간에도 생각과 태도, 취향이 40년 동안 쌓이며 ‘나’라는 세계관이 만들어졌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남은 한 가지
노력이 성과와 자산으로 돌아와야 할 40대 초입에 저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가 남아 있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이제야 분명히 알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회사 중심의 커리어를 멈췄습니다. 17년 차 마케터라는 사회적 경력을 내려놓고, 다시는 회사에 다니지 않기로 했습니다. 자산이 있어서도, 파이어족이라서도 아닙니다.
걱정보다 확신이 컸던 이유
주변에서는 더 걱정하고 말렸지만, 저는 별로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더는 다른 사람에게 고용될 이유를 찾을 수 없었고, 그 근거가 충분히 쌓였기 때문입니다. 가방끈은 짧아도 어떤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일이 싫어 도망치던 예전의 제가 아니라, 17년 동안 쌓은 짬밥을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2년 동안 변해 가는 세상을 지켜본 뒤에야 확신이 섰습니다. 현업에서 키운 본능이 다가올 시간을 지금 준비하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성공담이 아니라 생존일지입니다
이건 화려한 성공이나 경제적 자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쌓아 온 모든 것을 날린 아저씨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모든 힘을 짜내는 생존일지입니다.
다양한 경험에서 얻은 시선과 나락에서 아득바득 기어올라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는 퇴사를 위해 무엇을 준비했는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기록해 가겠습니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테니까요.
🎬 이 글은 유튜브 〈김단고의 생존일지〉 1화를 글로 옮긴 것입니다. 유튜브에서 영상 보기
➡️ 퇴사를 위해 무엇을 준비했는지는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AI 시대에 40살 직장인이 잘리기 전에 먼저 퇴사한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