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로 살아남는 방법
유튜브 시작 전 기획은 컨셉과 콘텐츠 두 가지면 됩니다
2026.02.15

유튜브는 일단 시작하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이걸 사업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기획 없이 시작한 사업이 얼마나 위험한지 떠올리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유튜브를 하면 콘텐츠와 나라는 브랜드가 쌓입니다. 모이는 게 아니라 탑처럼 층층이 쌓여 올라갑니다. 설계도가 없으면 건물이 어떤 모양이 될지 모릅니다. 3층쯤 쌓고 나서 ‘이 모양이 아닌데’ 하고 새로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쌓기 전에 설계도를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퇴사 전에 채널을 준비하면서 딱 두 가지, 컨셉과 콘텐츠만 확실히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유튜브에 맞는 기획은 아닐 수 있지만, 나 자신을 상품화해 혼자 먹고사는 1인 기업을 브랜딩하는 채널이라면 이 두 가지는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깊이 들어가면 끝이 없으니, 이 글에서는 머릿속을 정리하는 워밍업으로 핵심 포인트만 짚어 보겠습니다.
컨셉은 내 결핍에서 출발합니다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은 나라는 사람의 컨셉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상품이고 그 상품을 어떻게 팔 것인지에 대한 기본 줄기를 잡는 일입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꺼내 보는 것이 내 결핍입니다. 나를 상품화하려면 잘하는 것보다 갖지 못한 것을 먼저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잘하는 것을 내세우는 건 전문성, 즉 권위에 호소하는 것이고, 갖지 못한 것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서사와 감정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상품에 스토리를 입히는 게 브랜딩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이때 쓰는 것이 이전 글에서 소개한 성장 서사 작법, 즉 결핍에서 각성하고 투쟁하는 구조의 첫 단계입니다. 결핍이 없는 사람은 못 하냐고 물으실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결핍은 잃어버린 것이기도 하지만 해결하고 싶은 문제, 되고 싶은 상태를 아직 갖지 못한 것이기도 합니다.
결핍을 적고, 해결책을 붙입니다
저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자기 상태를 함께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생각한 저의 결핍은 세 가지였습니다.
- 망해서 재산을 다 날린 사람 (돈의 결핍)
- 이혼하고 외로운 사람 (관계의 결핍)
- 살이 많이 찐 사람 (외모의 결핍)
이것이 나라는 상품의 현재 상태입니다. 써 놓고 보면 우울한 것뿐이라 이게 팔리겠나 싶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핍에서 나온 문제를 파는 게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파는 것입니다. 그게 콘텐츠로 나를 상품화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각 결핍 뒤에 생각나는 해결책을 적어 봅니다. 여러 개여도, 지금 못 하는 것이어도, 내 취향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문제는 돈이 해결하지만 그건 과정이 아니니, 돈 말고 방법을 떠올립니다.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 재산을 날린 사람. 다시 사업을 일으킨다. 재취업해서 투자를 열심히 한다.
- 이혼하고 외로운 사람. 혼자를 기르는 삶을 소중히 여긴다. 적극적으로 가족을 만든다.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다.
- 살이 많이 찐 사람. 운동과 식단을 한다. 비만 치료 주사를 맞는다.
이야기 후보를 만들고, 두 기준으로 지웁니다
결핍과 해결책을 이어 붙이면 흐름이 있는 이야기 후보가 나옵니다.
- 망했지만 자기 사업을 다시 일으키는 이야기
- 망해서 회사 생활을 하며 투자를 배워 나가는 이야기
- 이혼한 뒤 나 혼자를 소중하게 기르는 이야기
- 이혼했지만 새 가족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야기
- 이혼 후의 자유를 즐기며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
- 살이 쪄서 열심히 운동하는 이야기
- 살이 쪄서 비만 치료 주사를 맞는 이야기
이것은 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선택지이면서 동시에 나라는 상품이 제공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입니다. 이 이야기를 콘텐츠로 풀면 소재도 뽑고 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으니 겸사겸사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팔지 고르는 기준은 두 가지였습니다. 지속 가능성과 사업성입니다.
- 2번은 성향이 맞지 않아 가장 먼저 탈락했습니다. 싫어하는 것을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 6번은 제 지식수준으로는 일기장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 7번은 장기적으로 가져갈 소재가 아닙니다.
- 5번은 지속 가능성은 높지만 사업으로 넓히면 커뮤니티나 매칭 쪽으로 가야 하는데, 집돌이인 저에게는 생각만 해도 기운이 빠지는 일이었습니다.
- 4번은 저에게 필요한 일이 맞지만, 콘텐츠로 만드는 과정이 너무 우울할 것 같았습니다. 지금 제 상황에서는 꿈이 너무 컸습니다.
나라는 상품의 현재 상태
못 하는 것도 적는다
= 7개의 이야기
사업성
남은 두 이야기를 하나의 컨셉으로 합쳤습니다
남은 것은 1번과 3번입니다. 하나만 정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둘 다 미련이 남아 꼭 같이 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두 이야기는 성장과 발전, 1인 브랜드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테마에서 결이 맞았습니다. 시청자층, 즉 관심사 알고리즘이 흩어질 여지가 적다고 판단해 합치기로 했습니다.
망해서 재산을 다 날린 사람이, 스스로를 소중하게 기르면서 나만의 사업, 나 자신을 상품으로 만들어 가는 이야기.
요약하면 ‘맨땅에서 1인 기업을 브랜딩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김단고의 생존일지〉의 컨셉입니다.
이 컨셉 뒤에는 객단가, 랜딩 페이지, 커뮤니티, 시딩, 손익분기점 같은 수익화 기획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건 한참 나중에 생각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나라는 상품의 컨셉만 잡아도 큰 성공입니다. 글로 풀면 쉬워 보이지만 저도 이게 맞나 저게 맞나 몇 주, 몇 달을 고민했습니다. 정말 오래 걸리는 분도 많습니다.
콘텐츠 기획은 어디서 찍을지부터 정합니다
컨셉을 정했으면 이제 그걸 유튜브에서 어떻게 보여 줄지 정해야 합니다. 유튜브는 영상이니 콘텐츠 기획은 어떻게 찍을지부터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컨셉 단계에서 정했으니, 이제 그 이야기를 어디서 할지 떠올려 봅니다.
이것도 시작 전에 대략이라도 잡아 두면 좋습니다. 내 주변을 돌아볼 기회가 되고, 나중에 촬영 계획을 세우거나 장비를 준비할 때 시행착오를 크게 줄여 줍니다.
내 삶은 스튜디오, 화면은 사각형 하나입니다
유튜브로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내가 주연이고 내 삶이 거대한 스튜디오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사각형 프레임 하나만큼입니다. 이 공간에 어떤 정보가 들어가야 나에게 가장 유리한지, 내 컨셉을 잘 드러내는 무대가 어디인지 떠올려 봅니다. 컨셉과 관련이 적은 것은 프레임 안에 들어올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나를 잘 기르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고, 제 생활 반경에서 여기에 가장 잘 맞는 공간이 주방과 식탁이었습니다. 밥을 해 먹는 것도, 콘텐츠와 브랜딩으로 나를 상품화하는 것도 모두 나를 먹여 살리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집에서 밥해 먹는 건 원래 하던 일이니 촬영 시간도 아낄 수 있었습니다.
같은 주방도 카메라 위치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다음에는 주방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정하려고 여기저기 카메라를 대 봤습니다.
- 멀리서 전체를 담으면 공간이 다 들어오지만 제가 주방의 일부가 되어 버립니다. 인물에 집중하기 어렵고, 보는 분과의 거리도 멀어집니다. 프레임에 들어올 것과 빠질 것을 골라야 하고, 그 기준이 바로 컨셉입니다.
- 싱크대와 전자레인지, 정수기 쪽은 실제 살림에 가까운 영역입니다. 제가 돌싱 브이로그를 컨셉으로 잡았다면 카메라를 이쪽에 두고 청소나 그릇 정리 장면을 자주 보여 줬을 것입니다. 가정적인 사람이라고 직접 말하는 건 부끄러우니, 하고 싶은 말을 배경에 간접적으로 깔아 두는 것입니다.
- 업소용 소스가 늘어선 쪽은 제가 고른 자리입니다. 외식업계에서 메뉴 사진을 찍거나 마케팅 분석을 하고, 음식에 관심이 많아 R&D팀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이런 습관이 들었습니다. 이 배경은 외식업 브랜드 마케팅 경험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고, 집에서 밥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취향도 암시합니다.
- 내가 주방의 일부가 된다
- 인물에 집중하기 어렵다
- 보는 사람과 멀어진다
- 돌싱 브이로그라면 이쪽
- 청소·정리 장면을 자주
- “가정적인 사람”을 배경으로
- 외식업 마케팅 경험을 암시
- 밥하는 걸 좋아하는 취향
- 나를 먹여 살리는 이야기와 연결
식탁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 가구가 별로 없어 거실에는 식탁이 전부라 선택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려 보니 코너를 끼고 앉으면 구석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안전한 집에 아늑하게 숨어 있는 느낌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나라는 캐릭터를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공간을 생각해 두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공간에서 하느냐에 따라 전달력이 달라집니다.
내용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은 음식 맛만 좋으면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내용만 좋으면 되지 않나’ 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식당에서 음식 맛만 좋으면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맛은 당연히 좋아야 하고, 예쁘면 더 맛있고, 깨끗하고 친절하면 더더 맛있습니다. 브랜드는 아주 주관적인 판단이라 사람들은 어느 한 곳을 콕 집어 좋다고 결정하지 않습니다. 느낌적인 느낌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며 내 컨셉과 어울리는 공간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집이 아니어도 됩니다. 점심 먹고 자주 가는 공원, 카페, 내 가게나 사무실,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의도입니다
장소를 정하라면서 어디든 상관없다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소가 어디냐가 아니라, 만든 사람이 그 장소를 의도하고 찍었는지, 그 장소가 내 컨셉을 잘 반영한다고 판단했는지입니다.
내 주변에 보이는 것들은 결국 나라는 브랜드의 태도와 가치관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달해 주는 장치입니다. 같은 컨셉, 같은 주제로 이야기해도 떠올리는 장소와 분위기는 사람마다 완전히 다릅니다.
퇴사라는 같은 주제를 이야기한다고 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술자리에서 화가 나서 때려치운다는 느낌으로 말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새벽에 스탠드 하나 켜 둔 책상에서 다이어리를 쓰는 손만 보여 주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같은 주제를 사람마다 어떻게 해석하고, 그 해석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나라는 브랜드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관점을 잘 보여 주는 장치 중 하나가 장소입니다. 내가 고른 공간, 조명, 앵글이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것을 전해 줍니다.
이 두 가지 뼈대가 유튜브를 지속하는 힘이 됩니다
제가 회사에 다니며 틈틈이 고민하고 결정한 것은 이 두 가지였습니다.
- 컨셉. 내 결핍을 어떤 이야기로 포장할 것인가. 망했지만 맨땅에서 1인 기업을 브랜딩하는 이야기.
- 콘텐츠. 그것을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 주방과 식탁, 혼자를 조신하게 기르며 사색하는 공간.
망했지만 맨땅에서 1인 기업을 브랜딩하는 이야기
주방과 식탁, 혼자를 조신하게 기르며 사색하는 공간
말로 하면 간단하고, 그냥 찍으면 되지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리 준비해 둔 덕을 많이 봤습니다. 이 두 뼈대가 있고 없고에 따라 유튜브를 지속하고 키워 나가는 힘이 크게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뼈대는 나라는 브랜드와 콘텐츠의 기준점이 되고, 그것이 머릿속에 박혀 있으면 거기서 뻗어 나가는 세부 기획이 물 흐르듯 잡힙니다.
여러분도 시작하기 전에 결핍 목록과 내 컨셉에 어울리는 공간 하나를 먼저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정한 컨셉을 바탕으로 브랜드에 살을 붙여 나가는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 가겠습니다.
🎬 이 글은 유튜브 〈김단고의 생존일지〉 13화를 글로 옮긴 것입니다. 유튜브에서 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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